함풍(함평)이씨 득관은 고려말이다.

이길현
2019-09-08
조회수 109

족보학 전문가를통해 우리성씨를 바라보면 



책 : “한국의 성씨와 족보”

지은이 : 이수건 (전 영남대 교수)

2003.6.10. 발행.

2004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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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평생 족보학을 연구했다. 한국의 성(姓)과 본관(本貫) 및 족보의 실상을 제대로 구명하기 위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 성씨조”를 배제하고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성관의 출발인 토성(土姓)과 토성의 내부구조 존재 및 분포를 알아야하는데 세종실록지리지 성씨조에 잘 나타나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15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처 본관별. 파별. 문중단위로 편찬된 족보, 가승, 행장 비문를 가지고 성관의 생성 유래와 족보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다고 한다. 처음부터 잘못 인식된 성관 지식과 조작된 자료를 갖고 성과 본, 조상의 세계를 구명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라는 것이다.


따라서 족보연구는 토성과 “세종실록지리지” 성씨조가 기본바탕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토성과 세종실록지리지를 배제한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몇 개만 소개하면


첫째 한국의 성관유래를 중국의 경우와 동일시한점

둘째 한국의 성관 주체가 토성인데도 그 시조가 중국으로부터 왔다는 시조 “동래설(東來設)”을 강조하는 것

셋째 중국처럼 봉후건국(封侯建國)한 데서 사성(賜姓) 및 수성(受姓)한 것이 아니고 고려초기 토성을 분정받은 뒤에 공신 외척 고관 등으로 인해 본관별로 봉작읍호(封爵邑號)를 받은 것이다. 어떤 고을에 봉군(封君)됨으로서 본관을 받게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등

참고 : 함평이씨 대종회는 함풍현과 모평현이 합해서 함평현이 됨으로써 함평이씨가 되었다는 무식한 논리는

         보학자들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는 일이다.  우림 함풍(함평)이씨는 고를 이름이 빠뀌어서 된것이 아니

        라 광봉께서 함풍부원군의 책봉에 의해서 즉 봉작읍호에 의서 함풍(함평)이씨가 성관된 것입니다.


조선시대는 유교사회로서 부계혈동을 중시하는 부(負). 자(子)로 이어지는 성손(姓孫) 으로 표현하며 개성(改姓) 개관(改貫)을 환부역조(換父易祖)라 하여 죄악시 했다. 그러나 명조(明祖) 현조(顯祖)를 확보하기 위해 족보편찬 때마다 조상세계의 조작과 가탁 투탁과 같은 행위를 자행했다.


저자는 말하길 역사학은 무엇보다 사실에 입각해야하며 그 사실은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론과 방법을 구사해도 그 근거 자료가 거짓이거나 조작되었다면 그 주장이나 결론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올바른 사론(史論)은 정확한 사실에서 도출되어야한다. 또한 객관적이고 진실한 사료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양반이란 신분적 특권은 고귀한 조상의 혈통과 명조 현조를 확보하고 출세를 위한 문벌의식이 강해서 후손 또는 신흥세력에 의한 본관의 개변과 조상세계를 조작 가탁. 투탁하는 행위가 자행되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의 성관형성과 유래에 관한 최초의 기본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 성씨조인데 이것이 정당하게 후손들에게 계승되지 못한 것의 안타까움을 전한다. 올바른 족보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족보를 편찬할 때 “의문점은 후세에 전해도 좋지만 거짓이나 명백한 잘못은 전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 한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권리는 없다. 또한 품성의 선악과 재질의 현우도 신분의 귀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양반의 신분적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상을 환부역조 조작하는 것은 죄악이며 가치가 없는 행위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책을 읽으며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꼭 우리와 연관된 함평이씨 족보를 앞에 두고 나무라고 꾸짖음을 당하는 기분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조작과 거짓은 족보학자는 금방 알게 됩니다. 단지 말을 안 할 뿐이지요. 족보는 진실대로 바로잡아야 후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됩니다.



다음은 본 책의 주요부분을 발췌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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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과 토성

우리 함풍이씨는 고려말에 본관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휘 광봉(1250년-1335년추정)조 할아버지께서 고려말에 생존하신 것과 일치하며 함풍부원군의 책봉으로 함풍이씨가 성관되었다는 사실과 일치합니다. 만약 고려초기 광종(925년-975년) 때 언조가 시조라면 고려 초기에 해당되며 함풍본관이 나타나야하는데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325년정도함풍본관이 한명도 없을 수 있겠는가? 언조가 시조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다. 함평이씨는 조선시대 1688년 무진보 부터 표지는 함풍이씨 내용은 함풍을 함평으로 바꿔서 나타난다.  함풍이씨가 원조이며 맞는 것입니다. 함풍과 함평은 

같은 성씨며 동족입니다. 시조가 광봉조입니다.



표와 같이 함풍 본관은 고려 말에 나타난다.

표에서 보는 봐와 같이 고려태조부터 10세기 전후 나타난 본관이다.

함풍이씨 본관은 없다. 언조가 시조라면 한명이라도 있어야하지 않은가?



표에서 보는 봐와 같이 고려태조부터 10세기 전후 나타난 본관이다.

함풍이씨 본관은 없다. 언조가 시조라면 한명이라도 있어야하지 않은가?


고려시대 명문 거족

고려시대 명문거족


고려시대 명문거족

조선중기 문과급제자

이제야 본격적으로 등장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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